Life

2인자 리커창 시진핑에 쓴소리 퇴임 8개월 만에 사망

지식기업가 2023. 10. 29. 09:57
반응형

2인자 리커창 시진핑에 쓴소리 퇴임 8개월 만에 사망 

68세의 나이로,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한 CCTV 출신의 후진타오가 시진핑과의 후계 경쟁에 나서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전에는 공청단 출신이었으나 총리로 10년간 지낸 후진타오는 실권이 없는 총리로 평가되었으며, 퇴임 이후 시진핑에 대한 쓴소리를 털었으며 '리커창 지우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전 총리인 리커창(68)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추모가 중국 내외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공식 부고 이외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반면, 국민들의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리커창은 생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경쟁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28일 오전, 중국 대표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웨이보에서 '리커창 동지 부고'라는 검색어가 상위 순위에 올라갔으나 오후에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대신 '급상승 검색어'로는 시진핑의 경제 정책과 관련된 키워드가 등장했습니다.



현재, 웨이보에서 '리커창 동지 사망' 해시태그(#)는 26억 회 이상 조회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게시물이 62만 건 이상 올라와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리커창의 생전 발언을 공유하며 그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리커창은 지난해 8월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한 뒤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長江黃河不會倒流)"라고 한 발언이 특히 유명합니다. 당시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조하며 국경을 봉쇄한 시기였는데, 이 발언은 시진핑의 코로나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는 리커창의 생전 발언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2020년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의 리커창의 발언도 재조명 받고 있습니다. 당시 리커창은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중국인 6억명의 월수입은 1000위안(약 17만원)"이라며 "이 돈으로는 도시에서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비판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이 발언은 시진핑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또한, 리커창이 총리 퇴임을 앞두고 국무원 판공청 직원들과의 작별 인사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幹 天在看)"고 말한 것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발언은 중국 최고 지도부의 독주를 제한하고 권력 감독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네티즌들은 리커창을 추모하며 붉은 촛불 이모지를 사용하여 "믿고 싶지 않다," "침통한 마음으로 리커창 총리를 애도한다," "편히 가세요" 등의 메시지를 게시했습니다. "인민의 좋은 총리,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와 같은 반응도 많았습니다.


리커창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시와 추저우시 일대에서는 중국인들이 그를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웨이보에는 그의 고향 앞에 국화를 놓는 영상 등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28일 오후 웨이보의 '인기 검색어 순위' 10위 안에는 리커창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실시간 인기 검색어 화면 상단에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여정은 중국 동북 지역의 활성화를 촉진한다'는 키워드가 등장했습니다. 

이 키워드는 시진핑이 주재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중국 동북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논의했다는 내용을 나타냅니다. 이 키워드는 핫서치 리스트에서 최고 순위 41위에 불과하지만 '급상승 검색어'로서 검색어 순위 상단에 랭크되었습니다.

28일 오후 10시 현재, '리커창 동지 사망' 검색어는 다시 7위로 올라갔습니다. 이는 네티즌들의 검색량이 더욱 늘어나면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 검색어 순위 상단에는 여전히 시진핑의 경제 정책과 관련된 키워드가 계속해서 머물고 있습니다.



리커창은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시진핑 체제 아래에서 '중국 2인자'로 국무원 총리직을 맡아 중국 경제 정책을 주도했습니다. 심지어 '시진핑 1인 체제'가 확립된 이후에도, 민생 문제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신만의 목소리로 중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일부 서방 매체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 당국과 공식 관영매체들이 리커창의 사망 소식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있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영매체인 인민일보,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은 27일 오전 8시쯤 리커창이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는 소식만을 간략히 보도했습니다. 

중국 당국의 공식 부고는 이보다 10시간 뒤에 발표되었습니다. 중국 당국은 이날 오후 6시 30분에 내놓은 부고에서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인 리커창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중국 매체들은 당국 발표문을 그대로 전달하며 추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하여 리커창이 상하이 한 호텔에서 수영한 후 심장마비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SCMP는 "중국 관영 매체들이 리커창의 사망 발표를 처리한 방식은 중국 당국에게 완전한 충격이었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상하이 정법대의 천다오인 교수는 SCMP에 대해 "리커창의 사망으로 중국 최고 지도부가 완전히 놀라는 것으로 보입니다"라며 "관영 매체들은 당 지도자들이 와병 중일 때 완전한 부고를 준비하는데 리커창의 경우 그러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분명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또한 "중국은 리커창의 사망에 대한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당국이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발표하고 신속하게 장례 준비에 착수한 것은 상황을 관리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의 전 총리인 리커창이 27일에 상하이에서 별세했습니다. 리커창은 한때 중국 국가주석 자리를 놓고 시진핑과 경쟁한 인물로, 이후 2인자로서 10년 동안 중국 경제를 주도했습니다.


중국 중앙방송인 CCTV는 긴급 소식으로 "중국 공산당 제17·18·19기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전 총리인 리커창 동지가 27일 상하이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상하이에서 휴식 중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구조조치를 받았으나 결국 68세의 나이로 별세하게 되었습니다.


리커창 전 총리는 지난 3월 5일 중국의 국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서 마지막으로 정부 업무를 보고한 후 신임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양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10년 동안 총리로 임기를 완수하며 중국의 발전을 이끌었다.

리커창은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으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지지를 받아 최연소로 중요한 자리에 오르는 등 빠른 승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으로 선출되면서 후계구도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대신 리커창은 2013년 국무원 총리로 임명되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시진핑의 권력 강화로 인해 그의 실권은 제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시진핑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하며 논쟁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2020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의 발언, "중국인 6억 명의 월 수입이 1천 위안(약 19만 원)에 불과하며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는 발언은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는 2020년까지 '샤오캉 사회'(물질적으로 안락한 중산층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시진핑의 공약이 실패했다는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진행 중이던 시점에서도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소신 발언으로 시진핑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며 논란을 빚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열린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는 리커창과 같은 공청단 계열이 전멸하고 시진핑의 최측근 그룹이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리커창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10년 동안 시진핑을 보좌하였지만 리커창이 퇴임하자 그의 고별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며 '리커창 지우기'가 신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