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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 별세 청소년축구 4강 지도자 나이 가족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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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 별세 청소년축구 4강 지도자 나이 가족 근황 

축구계의 원로인 박종환 감독께서 별세하셨습니다. 그는 1938년에 태어나 85세의 나이로 떠났습니다. 박종환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 대회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끈 역사적인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그 대회에서 한국은 브라질과의 준결승에서 아쉽게 한 골 차로 패배했는데, 그때의 추억은 많은 이들에게 남아있습니다. 중학생 시절 우리는 수업 시간에 TV 중계를 볼 수 없어서 선생님에게 라디오 중계를 듣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몰래 뒷자리에서 라디오 중계를 듣고 조용히 응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은 원래 그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예정이었습니다. 이전 대회에서 북한팀이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고 심판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었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5년간 국제대회 출전 자격이 박탈되었고, 한국이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선수들 역시 그다지 출중하지 않았지만, 김종부, 신연호 등 몇몇 선수가 그 후 축구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박종환 감독의 특징은 화려한 축구가 아니었고, 1대1 대결에서 공을 잃지만 끈질기게 뛰며 물리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붉은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 성과의 비결은 강력한 스파르타식 훈련과 그의 강한 리더십에 있었습니다.


박종환 감독은 축구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지만 축구계의 기득권층들로부터는 이방인과 반항아 같이 여겨졌습니다. 그의 출신이 축구 명문이 아니며 선수 경력이 빛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축구를 즐겨하던 독재자와의 연결로 인해 그는 축구지도자로서의 인생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박종환 감독은 인기스타로도 활동하며 축구계 밖에서도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그는 코메디언 이주일과 동안 학교 출신으로 방송에서 친구처럼 대우받기도 했습니다.

박종환 전 감독은 1938년에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으며, 춘천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감독 경력은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약세였던 전남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팀을 이끌어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박 전 감독은 1980년부터 1983년까지 U-20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아,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이루어냈습니다.

그 이후, 1989년에는 신생 프로팀인 일화 천마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K리그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1993년부터는 3년 연속으로 K리그 챔피언에 올라갔습니다.


박종환 전 감독의 빈소는 현재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의 뛰어난 감독 업적과 기여는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으며, 그를 추모하며 그의 업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감독 시절과 그의 축구팀 "박종환 축구"는 이제는 시간이 흘러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축구의 역사에서 중요한 단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성과로 한국축구는 세계 무대에서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나중에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고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승점을 기록한 김종부와 같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박종환 감독께서 고생하신 만큼 부디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그의 업적은 한국축구의 역사에서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